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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될 생각이 전혀 없었다던 그녀, 어떻게 2024년 현재 78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현역처럼 활동할 수 있을까
그녀의 인생은 어떻게 흘러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는지 한 페이지에 요약해서 인생사를 담아 보았습니다.
그 시작점
1960년대 말 숙명여대 초대 방송국장 시절
외부에서 사회를 봐달라던 요청이 들어와 미도파 살롱(명동 미도파 백화점 5층)에서
"let it be me"를 부른 것이 계기가 되어
1970년. 밴드 "타이거즈" 이필원의 눈에 들어 대뜸 그로부터 듀엣을 제안받아 너와 나란 뜻의 "뚜아 에 무아"
로 방송 출연,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1972년. 얼마 후 CBS 방송국에서 "세븐틴" DJ로 활동하다 동아방송으로 스카우트되어 청취율 1위 3시의 다이얼을 진행.
그즈음, 당시엔 무명의 문학청년이었던 박건호로부터 받은 모닥불이란 시에 멜로디를 입혀 노래를 만든다.
이 모닥불이 첫 솔로 앨범 타이틀곡이 됨.
활동 중반기
그 후에도 1년 365일 생방송하느라 눈코뜰 새 없이 바쁘다가 재충전을 위해 1981년 미국으로 건너갔으나 6개월 만에 돌아왔다.
1988년 올림픽이 끝난 후 다시 미국으로 가서 이장희 등과 함께 "라디오 코리아" 설립.
1994년 다시 한국으로 컴백 KBS의 "박인희의 음악 앨범" 진행
1998년 다시 도미(渡美)
삶의 끝지점인가 아니면 다시 시작인가?
2016년 정열을 불태우며 나이 70에 콘서트에 나가 송창식과 함께 매회 매진이라는 진기록과 함께 전국을 돌며 1년 동안 12회 공연을 성공리에 마침.
2017년 다시 미국행
다시 올 해 2024년이 되어 6월 14일 연세대 대강당에서 공연을 앞두고 있는 가수 박인희의 열정은 건강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 건강 비결이란게 유별난 게 없고 염색 안 하고 화장 않고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늦은 나이까지 "낡은 청바지에 커피 한 잔 마시러 명동의 길거리를 헤매던 과거를 회상"하게 만드는 가수가 몇이나 더 있을까. 손가락을 세어 보니 4~5명 정도가 아직 살아 있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들과 함께 익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불렀던 노래와 추억들은 아직도 생생하다. 영원히 잊히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끝-